힘들게 찾아낸 그는 빈곤한 경제를 겨우 유지하며 오직 하나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몰입하고 있는 것은 여자도, 도박도, 술도 아니었다. 바로 그림이었다.
<달과 6펜스>라는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류층으로 잘 나가던 중년의 한 사내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고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사라졌다가 자신을 휘감고 있는 예술혼에 사로잡혀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중략) 이 신화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그 분신의 주인공은 바로 화가 폴 고갱이다.
증권 브로커였던 폴 고갱은 35세가 되던 해에 증권시장의 붕괴로 직장을 잃고 전업화가로 나선 조금은 특이한 인물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숙명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훗날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거장이 된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나이 35세, 그때 나는 증권회사의 회계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붓을 들었다. 그것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끈기로 이어갔나 하는 사실뿐이다." (중략)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일을 계속하면서, 가족을 지켜내면서, 자신의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달의 세계로 몰입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안상헌/ 사람과 책 57호
Posted by mindguer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