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명함제작업체의 웹사이트를 보면
급하게 필요한 경우, 대량으로 뿌릴 경우, 업종의 특징을 살리고 싶은 경우 등등...
사용자의 시각에서 원하는 재질과 디자인을 선택하기 쉽도록 구성을 해 놓았다.
하지만, 화면으로 아무리 쳐다보아도 종이의 질감이나 광택이 어떤지, 인쇄를 했을 때는 어떻게 달라 보일지 알 수가 없으니 만들 때마다 맘에 들지않는다. 하여, 점심을 먹고 슬슬 동대문 근처 명함회사로 샘플을 보러 나갔다.
퇴계로와 을지로의 갈림길에 자리한 명함집 건물을 마주했다.
곡선을 이룬 벽면이 직각의 울긋불긋 네온간판에 가려 잘 몰랐는데... 다가가보니
허... 이거... 장난 아니다.
고층빌딩과 다세대주택이 좌우로 빽빽하게 들어찬 사이에 이런 멋스런 건물이라니. 오, 저 테라스 좀 봐! 물줄기처럼 내려오는 저 기둥은 어떻구! 감탄도 잠깐. 이런, 테라스에 실외기와 물통을 올려놓았네... 그건그렇구 출입구는 어디야?
'새한빌딩'이라는 손바닥만한 명판이 쑥쓰럽게 붙어있는 출입구를 간신히 찾아 올라간다. 철제프레임에 유리를 빠데로 붙여놓은 오래된 창문 아래로 계단이 아닌 램프가 5층까지 이어져 올라간다. 요즘이야 법으로 휠체어용 통로를 만들지만 이 오래되보이는 건물은 이미 그렇게 지어져 있다는 게 신선했다.
2,3층의 일식요리학원을 지나 4층에 이르자 명함집 사무실이 나온다.
곡선의 건물안에 직각의 책상과 파티션들이 어색하게 자리잡고 앉아있다. 밖에서 보이던 테라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아... 이거 이렇게 쓰기엔 너무 아까운데...
명함제작의뢰를 마칠 쯤 슬쩍 물어봤다.
'건물이 참 특이하네요.'
'김중업씨라구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대요. 서산부인과라면 다 압니다.'
'건물주는...'
'저희 사장님이세요.'
멍한 기분으로 회사에 돌아와 건축하는 동생에게 물어봤다.
김중업.
김수근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
1965년에 설계한 서산부인과는 건축전공자라면 꼭 한번은 들리는 곳.
건축가들과 서울시가 건물의 문화재지정과 보존문제를 두고 몇 십년째 탁상공론만 벌이는 곳. 뭐 그런... 답답한 얘기.
평면도를 보니... 이건... 뭐 거의 19禁 재치만발 남아선호 디자인. 누가 볼까 얼른 창을 내렸다 올렸다하며 도면을 보기는 처음.
우리가 입구로 알고 올랐던 램프는 원래 병원 내부의 임산부를 고려한 통로. 현재는 층별로 임대를 주기 위해 입구를 새로 낸 듯 하다.
저 건물이 개발광풍에 사라지지 않고 여태껏 남아 있는 것만도
이 땅의 건축가들과 건물주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할 일인지, 분노해야할 일인지는
나같은 문외한이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저 건축을 하는 이들에게 저 건물이 어떤 의미인지 한번 물어보고는 싶다.
Posted by mindguer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