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순감각'이란 '말의 순서감각'이란 뜻으로 내가 붙인 이름인데 영어로는 'sense of word order' 라고 하면 된다. 이 '어순 감각'은 특히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영어를 배울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옛날에 한참 영어에 미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이 '어순 감각'을 터득하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걸 써먹어 보느라고 며칠동안 잠도 안자고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영어를 꽤 잘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웠건, 학원에서 배웠건, 유학 가서 했건, 어떤 방법으로 했건 간에 이 '어순 감각'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나는"과 "갔다"의 사이에 그 내용을 보충하는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가는 샌드위치같은 모양이다.
그에 반해서 영어는, "나는 갔다" 하고 결론을 먼저 말한 뒤 그것에 대한 보충설명을 덧붙여 나간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이 영어를 할 때 가장 명심해야할 중요한 개념이며, 또한 '영작문'이나 '말하기'의 중요한 공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초보자가 영어회화를 하는 것을 보면 거의 다 비슷하다. 모처럼 미국인과 'free talking'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대화를 시작한지 2-3분도 안 돼서 미리 외워두었던 예문들은 대부분 밑천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작문을 해서 말하는 수 밖에 없는데, 이때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완벽한 문장을 다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입을 열려고 한다.
그런데 이 '머릿속 작문'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닌지라, 머릿속에서 단어들을 이리 저리 꿰어 맞추느라고 자연히 얼굴표정은 일그러지고, 심지어는 눈을 흡뜨고 천정을 째려 보면서 애쓰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영어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몇마디 하는데 그렇게 괴로워서야 누가 영어를 하겠는가. 내가 '말하기'를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문장을 다 만든뒤에 말하려하지 말고 '누가 무엇을 했다' 또는 '무엇이 어떠하다'부터 말한 뒤에 보충설명을 붙여나가라" 하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요령 같지만 그 식으로 말을 하면 신기할 정도로 영어가 술술 풀려 나온다.
자, 그럼 아까 예로 들었던 문장을 영어로 말해보자.
"나는 어제 오후 점심식사후에 여동생과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갔다."
자, 어떻게 말을 시작하면 될까?
말을 시작할때는 '누가 무엇을 했다'부터 하라고 했으니까 '나는 갔다'부터 시작하면 된다. 영어로 말하면?
그렇지! 'I went"하고 시작하면 된다. (수업을 하다 보면, 학교 졸업한지 꽤 된 사람들중엔 큰 소리로 "I goed"하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자, "I went"하고 main idea를 말했으면 그 다음엔 그에 대한 보충설명을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 순서는 정철선생의 위대한 발명품 '기자회견식 어순감각'을 익히면 간단히 해결된다.
이 '기자회견식 어순감각'이라는 것은 내가 옛날에 영어도통공부(?)를 하던 중에 터득하게 된 비결인데, 영국 미국의 학자들에게 이 개념을 설명해주면 자기네 나라말이 그런줄 미처 몰랐었다고 감탄을 하면서 신기해 하곤한다. 자랑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기자회견식 어순감각'을 설명해 보기로 하자.
영어문장의 흐름을 잘 살펴보면 기자회견을 하는 순서와 영낙없이 닮았다. 예를 들어, 북한을 탈출한 한 귀순가족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대부분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귀순자: 내래 거저 배가 고파서 내려왔습네다
기자: 어떻게 내려왔습니까?
귀순자: 배를 타고 내려왔습네다
기자: 배는 어떻게 구했습니까?
귀순자: 중국에서 이천불 주고 샀습네다
기자: 그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귀순자: 미국에 있는 친지가 보내주었습네다
이런식으로 귀순자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면 기자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거기에 답하면 또 질문하고 하는 식으로,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고 진행이 된다. 영어문장의 전개를 보면 영락없이 이 순서를 닮았다. 그러면 아까 친구가 전화로 말하던 예문을 기자회견식으로 풀어보자.
친구:나는 갔다
기자:어디에 갔습니까?
친구:시장에
기자:어떻게 갔습니까?
친구:버스타고
기자:누구하고 갔습니까?
친구:여동생하고
기자:언제갔습니까?
친구:점심식사 후에
기자:그게 언제입니까?
친구:어제 오후
이렇게 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순서대로 문장이 전개된다. "나는 갔다" 하면 기자들은 당연히 "어디에 갔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지고, 그 대답을 듣고 나면 또 궁금한 것을 묻고..... 하는 순서로 문장이 계속된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 기자회견을 영어로 해보자.
친구: l went
기자: where?
친구: to a market
기자: how?
친구: by bus
기자: with whom
친구: with my sister
기자: when?
친구: after lunch
기자: when?
친구: yesterday afternoon
어떤가? 너무 쉽지 않은가? 영어를 말할때는 이렇게 먼저 "누가 무엇을 했다"는 main idea를 말하고 난 뒤에 듣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 할만한 말부터 보충개념으로 붙여나가면 된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외우던 버릇대로 "응, 순서를 외워야겠구나"하고 "where, how, with, whom..........."하는 식으로 순서를 외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듣는 사람이 궁금해 할만한 순서를 따라가면 된다.
이 문장의 경우에는, "I went"라는 말을 듣고 나면 당연히 "어디로 갔을까?"하는게 궁금해지는 법이니까 "to a market"이 오게 되지만, 그 다음 순서는 그리 중요치 않다. 그저 궁금해할만한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면 된다.
[경고]
연습도 해보지 않고 그냥 슬쩍 넘어 가려던 사람은 가슴에 손을 얹고 "No pain, no gain." 를 세 번 외운 다음, 즉시 되돌아 가서,입에서 술 술 나올 때까지 연습하기 바람.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노력 없이 되는 것 없다"
자, 소감이 어떠신가? 일부러 암기한것도 아닌데 그냥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는가? 영어란 것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되어 있으니까 미국인들이 그렇게 힘도 안들이고 쉽게 영어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입시학원에서 배우듯이 그렇게 복잡하게 따져가며 해야한다면 이 세상에 영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정철
Posted by mindguerilla